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4 셔먼 (문단 편집) === 미군 최초의 제대로 된 중(中)형전차 등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fquowqclcv61.jpg|width=100%]]}}} || || '''M4 (75) 셔먼의 내부 구조도''' ||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37mm]] 정도의 주포나 단포신 [[곡사포]]를 탑재한 전차가 고작이던 전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차의 성능이 높아졌으며, 이러한 전장 상황의 변화에 미 군부는 타국의 이러한 신형 전차를 기존의 구식 전차로는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해 75mm 주포를 탑재한 신형 전차를 개발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에 그동안 전차 개발을 막고 있던 국방수권법 17조를 폐지한 후, 신형 전차를 개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직후 [[75mm]] 주포를 탑재하고 선회 가능한 포탑을 단 전차를 개발하려 했지만, 미군으로서는 포탑에 75mm급의 주포를 다는 것을 아직 시도해본 일이 없었기에 급한 임시방편으로 차체에 [[75mm 전차포 M2–M6|M2 및 M3 75mm 전차포]]를 단 [[M3 리]]를 제작한다.[* 이 75mm 포는 운용초기 문제가 많았는데 미국이 얼마나 전차에 대한 개발 경험이 부족했는가를 볼 수 있다. 우선 조준경이 포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닌 잠망경이 포에 연동되는 형태였는데 문제는 이게 제대로 연동되지 않았다. 더불어 전차 포탄에 대한 개발 경험도 부족하여 포탄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특히 바닥이 부드러운 사막에서 신관이 작동하지 않아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신관의 모양이 문제였으며, [[영국군]]은 프랑스제 75mm 포탄의 신관을 떼어다 붙여서 해결하였다. 이 문제는 이후 모두 해결되었으며 이렇게 M3를 개선한 경험은 셔먼 전차에도 적용되어 동일한 문제를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M3 리는 어디까지나 차체에 반고정된 주포를 탑재했기에 자유롭게 회전가능한 포탑에 탑재한 주포와 달리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결점이 있었고, 이에 미 군부는 포탑에 75mm 주포를 얹은 제대로 된 후계 전차로 1940년부터 M4 셔먼을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M2 전차]]부터 이어져온 차체를 유용하여 디자인했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서 생산에서는 유리했지만 구식차체의 다양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 전선에서 티거와 비교되는 바람에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루는 매체에서 자주 파괴되는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알고 보면 체급을 무시하고 억지로 맞붙여 놓은 결과다. [[6호 전차 티거]]는 [[5호 전차 판터]]와도 격이 다른 중전차다. 게다가 M4 셔먼은 5호 전차 판터보다 더 가볍다. 덤으로 M4 셔먼의 후계 전차이자 [[중전차]]인 [[M26 퍼싱]]도 단순 무게로 치면 판터보다 가볍다. 이래서 M4 셔먼을 굳이 독일군 전차와 비교하려면 그나마 셔먼에 비해 5톤 정도 더 가벼운 [[4호 전차]]와 비교해야 한다. 실제로 티거가 나온 시점에서도 독일의 주력은 4호 전차였으며, 셔먼은 4호 전차를 상대로 업그레이드 상황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했지만 30톤vs25톤으로 셔먼이 5톤 정도 무거운 만큼 전반적으로 우월한 성능이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대규모 운용이 아닌 1대1 성능만을 보고 비교하는게 대부분이였고 현재의 이미지가 정착됐다. ] 미군으로서는 처음으로 360도 선회포탑에 75mm급 중포를 얹은 차량이며, 등장 당시만 해도 장갑과 화력, 기동성을 비롯한 전차의 요소 모두가 상당히 균형 잡힌 우수한 전차였다. 당시로서는 첨단기술도 적용되어 있어서 기동중에도 목표를 계속 조준할 수 있도록 주포에 수직안정장치를 장착하기도 했다. 다만 이 장치는 상하안정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실전에서 얼마나 명중율을 높여주었는가는 평가가 갈리는데, 최소한 저속 기동 중에는 어느 정도 명중을 낼 수 있었고 고속 기동 중에도 포수가 표적을 조준경 밖으로 놓치지 않고 계속 쫓는 데 유용했다고 한다.[* M4A3 기준으로 10마일(16Km/h)로 기동하면 1000-1200야드 거리에서 수직 1.64밀, 수평 2.45밀의 오차를 냈다. 대략 1000미터 거리에서 상하 1.6미터, 좌우로 2.5미터 정도의 오차이다.] 적 차량 258대 격파 기록으로 유명한 셔먼 전차장 라파예트 풀의 경우 수직안정장치를 이용한 기동간 사격으로 적이 예측하지 못하게 사격하는 걸 특히 선호했다고 하니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던 듯. 개발 당시의 주포는 우수한 속사 능력, 고폭탄의 화력과 더불어서 당시 기준으로 뛰어난 대전차 능력을 지녔던 75mm 포가 선택됐다. 해당 75mm 포의 원형은 19세기말 [[프랑스]]가 개발, 전세계적 히트 대포가 되고 미군도 [[제1차 세계 대전]] 이래로 애용한 [[1897년식 75mm 야포|M1897 75mm 야포]]로, 이 포는 짧은 포신에 비해 포구 초속이 빨라 독일군도 프랑스에서의 노획품에 머즐브레이크를 장착한 뒤 7.5cm PaK 97/38(f) 명명, 한동안 [[대전차포]]로도 쓴 물건이다.[* 해당 시기는 독일군이 주력 대전차포로 37mm [[PaK 36]]을 굴릴 때고 도긴개긴이지만 그나마 좀 낫다 싶은 50mm [[PaK 38]]조차 배치되기도 전이다.] 참고로 시제형 명칭은 [[T6 전차]]라고 했다. 셔먼이 세상에 최초로 등장했을 당시엔 회전 포탑에 75mm 급의 주포를 장착한 전차는 [[4호 전차]]와 [[T-34-76|T-34 76mm 탑재형]]을 제외하면 대량생산된 전차 가운데엔 없다시피해서 화력면에서는 충분했다. 셔먼의 개발이 1940년, 생산이 1941년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독일 주력 전차인 [[3호 전차]]와 [[4호 전차]]를 상대하기엔 충분한 화력을 발휘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도 셔먼은 5톤이 더 무거운 만큼 전체적인 성능이 높아 4호 전차보다 주행성능이 우수하고 공방능력에서는 장포신형의 F2/G형 이후의 4호 전차와 비교했을 때 차체전면을 포함하여[* 4호 H형 80mm 78도(실 방어력 81mm) vs 셔먼 초기형 51mm 56도(실 방어력 93mm), M4A3E2 셔먼 점보는 47도 경사에 101.6mm] 방어면에서는 우세했으며[* 셔먼의 측면이 38mm 수직장갑이라고 까이지만 4호 전차 H형은 30mm 수직장갑이라 더 얇다.] 공격력도 딱 4호 전차 G형의 전면 장갑을 표준 교전 거리에서 무리 없이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3호 전차와 비교하면 주행성능은 비슷하지만 공방능력이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 중 하나가 바로 300대의 셔먼이었으니.[*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T-34의 경사장갑 두께가 45mm임을 고려하면 셔먼 초기형은 50mm, 중후기형은 62mm로 더 두꺼워 오히려 T-34보다 정면에선 잡기 힘들었다. 물론 43/48구경장 75mm까진 각도만 좋다면 방호가 가능하지만 88mm급부터는 불가능했다.] 셔먼의 배치 초기 아프리카에는 나름 중장갑의 셔먼을 잡을만한 전차인 43구경장을 장착한 4호 전차 F2형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8,8cm FlaK]]까지 동원될 지경이었다. 문제는 저 75mm 포를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고 [[유럽]] 전선에서도 계속 썼다는 것. 이는 후속 주포의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군은 티거가 등장하기 전인 1942년 초부터 [[M10 GMC]]에 장착된 3인치 M5/M7 주포에 주목하여 이에 준하는 주포를 셔먼에 장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3인치 M7은 포미가 너무 커서 포탑에 그야말로 쑤셔넣는 수준이라 도저히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3인치 포의 경량화 버전이자 [[M18 헬캣]]에 탑재된 76mm M1 대전차포조차도 너무 커서 제대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이미 76mm M1 주포를 장착했던 M4A1 셔먼(제식명 M4A1(76)W)은 사용 부적합 판정을 받고는 도로 75mm를 장착해야 했다. 결국 사용 가능한 76mm 포 버전 셔먼이 개발된 것은 T23 중형전차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해당 전차의 포탑이 셔먼에 장착된 1944년의 일이었다. 거기다 생산해된 M4A1(76)W의 재고도 대서양을 건너느라 D-Day를 맞추지 못하고 1944년 7월 코브라 작전이 되어서야 첫번째 전투를 치렀다.[* Zaloga, S., Laurier, J., M4(76mm) Sherman Medium Tank 1943-65, 2013, p.3-7] 더해서 셔먼을 대체할 후속작인 [[M26 퍼싱]]이 심각한 [[파워팩|심장]] 질환을 달고 있어서, T23의 포탑을 셔먼에 장착하는 형식으로 때우고 기다렸으나 전쟁이 끝나갈 때 쯤에도 해결 못하고 선행배치 형식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와중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의 [[6호 전차 티거]]와 같은 강력한 중전차와의 조우시 기존의 75mm 포로는 제대로 대응이 불가능함을 확인했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대책 없이 "이런 예외적인 성능의 중전차는 독일군 내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전황 자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라는 안일한 대응으로 연합군 전차병의 희생을 늘렸다. 물론 통계적으로는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이 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더라면 재수없이 티거와 조우해서 싸워야 했던 영/미군 전차병의 희생을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시기면 독일은 [[5호 전차 판터|판터]]를 양산하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이 독일군의 신형 전차 역시 티거와 마찬가지로 75mm 포로는 500m 안까지 접근해서, 그것도 측면을 노려야 상대 가능한 수준이어서 정면에서 격파하려면 76mm 포로, 그것도 HVAP같은 특수탄을 사용하거나 취약 부위를 노려 사격해야 했다. 물론 셔먼의 '타이거 쇼크'는 주로 1944년 이후 유럽 전선에서 생겼고, 티거는 생산량 자체가 원체 적은데다 1943년만 해도 생산된 수량 대부분이 격전지인 동부전선에 배치되었으므로 셔먼과 티거는 거의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셔먼이 겪은 것은 '타이거 쇼크'가 아닌 '판터 쇼크'라고 부르는게 좀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티거와 셔먼은 판터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42년 12월 4일 북아프리카 [[튀니지 전투|튀니지]]에서 최초로 조우'''해 포화를 주고 받았으며, 그 와중에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기동가능한 티거 131호가 영국군에 노획되었다. 그중 육군 501 중전차 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후 동부전선에 배치되었지만 504 중전차 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이탈리아]] 전선에 남아 방어전을 치르며 영/미군의 셔먼과 교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나 미군 전차병이 독일군 전차를 싸잡아 "타이거"라고 불렀던 점[* 실제로도 노르망디 상륙이후 '타이거와의 교전'을 보고한 미군 기갑부대의 기록은 수도 없이 많지만 독일측의 기록과 교차 검증 과정을 거친후 실제로 티거와 미군 셔먼의 교전이 확인된 사례는 '''단 3건''' 뿐이다. 대부분은 포탑에 쉬르첸을 둘러 실루엣이 밋밋해진 4호를 티거로 오인한 사례였거나 심지어 영 다르게 생긴 판터조차 티거라고 보고해 버린 경우였다고 한다.] 등을 감안하면, 판터보다 먼저 등장해 그 위력을 과시한 티거로 인해서 연합국 전차병이 '타이거'라는 단어를 '독일 전차' 내지는 '중전차'에 해당하는 일반 명사로 인식해 버렸고, 판터의 등장과 그로 인한 쇼크조차 '판터 쇼크'가 아닌 '타이거 쇼크'가 되어 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셔먼의 진정한 문제는 셔먼 자체의 성능이 아니라 '''이거 말고는 딱히 투입할 전차가 없었던''' 미/영의 전차 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인 44년 중반 이후를 기준으로, 소련은 주력인 T-34 이외에도 티거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자주포]] 및 [[중전차]]를 운용했다. [[SU-152]]와 [[ISU-152]] 같은 대구경 [[곡사포]]를 장착한 다목적 중[[자주포]]는 고폭탄 한발로도 티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또한 [[SU-85]]/[[SU-100|100]]처럼 대공포 기반의 직사포를 가졌고 연사속도도 괜찮고 준비탄도 충분한 대전차전 특화 [[자주포]]도 등장하여 티거를 상대 할 수 있었다. 역시나 122mm 포를 사용하여 어느정도 티거를 상대할 수 있는 다른 [[자주포]]도 많았다. 중전차로 보면 [[IS-2]] 같이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고작 판터 수준의 체급에 측면까지 두꺼운 장갑을 바르고 여기에 복잡한 형상의 경사장갑까지 대폭 도입하는 바람에 내부 공간 효율에 문제가 좀 있었다. 또한, 독일의 중전차 개념과는 달리 대전차전에 큰 비중을 두고 만든게 아니라서 주포도 구경에 비해 관통력이 부족했다. 그래도 44년형이면 주포도 더 업그레이드 되었고 체급에서 나오는 한계인 내부공간을 제외한 약점도 거의 다 해결된 상태다.] 공방 성능에서 티거를 뛰어넘는 중전차를 투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 시기에 T-34는 이미 제한적으로 티거를 상대할 수 있는 85mm 포를 장착한 상태라서 앞서 설명한 여러 [[자주포]]의 지원을 받거나 숫자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티거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은 [[미국]]과 달리 다양한 체급의 다양한 차량이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기대여법|공여받은]] 셔먼은 딱 75mm 포[* 전쟁 말기에 들어온 76mm 셔먼은 소련군에 널려있는 [[T-34-85]]의 85mm와 통상탄 관통력은 비슷해도 구경이 작아 화력이 낮고 소련은 어땠든 썩어도 준치라고 일반탄보다 더 관통력이 높은 85mm용 APCR탄을 일정숫자 이상 충분히 양산하여 차량당 4발 정도 보급한데 비해 셔먼 전차용 고속철갑탄은 대전기간 대부분 미군 셔먼에게도 통상적인 제식탄으로 보급이 안되었기 때문에 동부전선에서 85mm APCR vs 76mm 일반AP계 탄으로 비교시 화력이든 관통력이든 T-34의 85mm가 셔먼의 76mm을 훨씬 뛰어넘는 성능을 보였다. 따라서 '약한' 셔먼은 '강한' [[T-34-85]]보다 간단한 임무를 맡았다.] 전차에 걸맞는 추격 및 보병지원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무리없이 써먹을 수 있었다. 반대로 미군 입장에선 아무리 성능이 좋아 봤자 셔먼'''만''' 가지고 체급상 상대가 힘겨운 티거 같은 중전차까지 상대해야 했다는 게 문제의 근원이다. 함대전으로 따지면 전함이 단 한대도 없는 [[순양함]], 그것도 [[구축함]]이나 [[순양함]] 정도만을 상대할 것을 전제로 만든 [[순양함]] 전대로 적 [[전함]]과 싸워야 했던 건데, 아무리 이쪽의 성능이 좋다고 해도 근본적인 체급 차이로 나오는 전투력 차이를 어쩌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기더라도 큰 희생을 치러야만 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군사기술이 수십년을 앞서갈 만큼 월등히 성능이 우월한 것도 아니고. 미국도 [[M6 전차]] 같은 걸 만들어보긴 했으나 결국은 더 가벼운 중형전차를 선호했는데, 이에는 적 전차 성능을 오판한 문제도 있지만 바다 건너 배로 전차를 수송해 투입해야 하다 보니 무거운 전차는 꺼리게 되었던 이유도 크다. 셔먼의 사진을 잘 보면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바리에이션이 차체전면과 후방에 고리가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크레인으로 줄을 묶은 뒤 전차를 들어올려 배에 싣기 위한 용도였다. 당시 화물선 구조상 이런 불편한 방식을 써야 하는데 당시 미국에서 크레인으로 하역할 수 있는 중량 한계는 대개 40톤이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xCseDwtH59M&t=5m10s|전차 속으로: M4A1 Sherman 1편]]] 따라서 독일처럼 40톤을 한참 초과하는 전차(티거, 판터)를 중형전차처럼 굴릴 수 있었던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셔먼이 엄청나게 터져나가고 나서야 뒤늦게 티거를 잡을 수 있는 76mm포를 도입하는 등 애초에 중전차에 대응할 방법을 주지 않았던 것도 문제. 보통 보병 지원용으로 많이 쓰고 통계적으로는 티거를 조우할 확률이 별로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만나기만 하면 그냥 눈 뜨고 죽는 것 말고 방법이 없는 극상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손실은 계속 커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숫자가 적다고는 해도 아예 상대를 못 하는 적이 나와버리면 방법이 없으니까. 물론 미군도 강한 적 전차가 나타나면 쓰라는 전담마크맨이 있긴 했다. 문제는 그 마크맨이 [[M10 GMC|장갑이 빈약]]한 [[M18 헬캣|대전차]]용 [[M36 잭슨|자주포]]였고 화력은 좋았으나 전차에 비하면 장갑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적 전차를 기습[* 기습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적의 의표를 찌르는 공격 기동이나 방어전에서의 매복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 문제는 참신한 공격 기동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습은 보통 매복에 의해서 달성되는데, 노르망디 상륙 이후 연합군은 주로 공자의 입장에서 전투를 치렀다는 점이다.]해서 처리하는 식으로 싸워야 했으므로 정면에서 만나면 제대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전쟁 말기에 도입한 [[M36 GMC]]는 [[90mm 대전차포|90mm 주포]]로 화력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으나 빈약한 장갑은 여전했다. 대전 중기부터는 [[영국]]의 주력전차 역시 셔먼 계열이 차지한다. 그나마 이쪽은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준비해놓기는 했지만 17파운더 포의 고폭탄 위력 부족으로 인해 전차보다는 대전차 자주포로써의 의미가 강했다. [[소련]]처럼 티거와 맞상대가 가능한 중전차가 있었다면 셔먼이 오랫동안 관통력이 떨어지지만 보병 상대로는 더 나은 75mm 포를 쓰더라도 여차하면 중전차를 부르는 걸로 대응이 되니 나름 정당화가 되지만, 그런 게 있었어야는 것이 전제되어야한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결국 중전차가 없다는 문제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막상 다른 대안이 있는 소련 조차도 [[T-34 전차]]가 티거를 잡을 수 있도록 개량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